홍콩한타임즈
토요 문학 산책
홍콩의 하늘
김동환
하늘은 구겨진 일기장 같았다 펴보았지만 너는 상처가 남은 패잔병이오 하는 오서독스orthdox 복서의 길게 뻗은 스트레이트 한 방에 잠시 별빛이 보이는 듯도 했다 글자들은 이미 흩뿌려져 짙은 스모그가 되고 사람들은 먼지처럼 웃고 있다.
피부색은 다르지만 벗겨보면 배꼽이 닮았다 어미 하나만큼은 나도 가지고 있다는 자랑같이. 탯줄이 끊어지며 던져진 생은 고리타분한 늙은 시인의 메모와는 달리 수평을 빙자한 수직의 계단, 구르는 방법밖에 몰랐던 나는 차곡차곡 아래로 절여져 이국에 내려졌다 상식과 비상식은 우기를 닮아가는 건기처럼 혀를 섞어대고, 딸깍발이의 옹졸한 기세만 남아 파초를 찾아 방황하는 북국의 사나이.
누군가는 숨 막힌다지만 고향 하늘과 닮았다 집도 회사도 황사 가득 찬 고향 하늘 아래만 있었고, 허공에 쏘아올려진 센트럴 빌딩들 사이에 나는 침몰 중. 냄새라도 같은 이 하늘로 비어버린 곳간에 흐르는 그리움의 토악질을 닦아낼 뿐, 어깨를 두들기는 검은 소녀의 주먹에는 말의 온기가 없이 가난하다.
여전히 헐벗은 농토마냥 누렇게 달아오른 하늘은 부끄럼 없이 씨앗을 바라고 나는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발정난 들개의 모습으로 익숙한 첫사랑을 떠올리며 언어를 사정없이 뿌려댄다 적도의 태양처럼 붉은 구름칼을 들고.

<시작詩作노트>
한국인에게 ‘가장 사랑하는 시인’을 물으면 윤동주는 늘 그 중심에 있습니다. 상실된 조국과 이국 땅의 경계에서 가족과 고향, 그리고 자신의 실존을 끊임없이 번민하며 다스렸던 그의 언어는 시대를 넘어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저는 그저 수많은 글장이 사이에 숨은 이름 없는 모래알에 불과합니다. 윤동주 시인이 가졌던 역사적 무게나 보편적 미학에 비하면 제 글은 투박하고 거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타국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뒤틀린 가치관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는 점만은 그와 닮아 있다고 감히 믿고 싶습니다.
제게 홍콩은 낭만의 도시가 아닙니다. 탯줄이 끊긴 채 던져진 생이 마주한 ‘수평을 빙자한 수직의 전쟁터’입니다. 윤동주 시인이 창밖의 밤비를 바라보며 좁은 방 안에서 자신과 조용히 악수를 나누었다면, 저는 숨 막히는 센트럴의 빌딩 숲 사이에서 ‘붉은 구름칼’을 휘두르며 암울한 회색 공기를 베어내려 합니다. 들개처럼 거친 언어를 사정없이 뿌려대서라도, 이 이국(異國)의 하늘 아래서 숨 쉴 틈을 찾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과 떨어져, 때로는 자녀들과 헤어져 이 땅에서 치열하게 땀 흘리며 오늘을 버텨내고 계신 홍콩 교민 여러분께 이 시를 헌사합니다. 우리 모두는 비록 침몰 중일지라도, 서로 닮은 배꼽을 가진 채 각자의 구름칼을 휘두르는 고귀한 사나이이자 여인들입니다.
시인 김동환
제주 출생.
2024년 서정문학 상반기 신인상 등단
4.3 전국 청소년 문예공모 대상
적도문학상 수상 외
(현) KIS 한국과정 국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