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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문학 산책


"봄, 내려 앉다."


김동환


광주 금남로 거리에 내려앉은

얼룩에는 이름이 없다


검은 군화발 아래

삼켜야 했던 언어들

쏟아진 자리

만세의 냄새가 아직 남아 있고

주인 잃은 숨결만 눈을 붉힌다


분분히 내리는 꽃잎이 얼룩을 덮는다

포근히 잠들라며

눈물처럼 흩어진다


떨어지는 꽃잎 따라

나도 운다


기억도 시간도 멈춘 채

깨어 있는 거리

밤마저 머뭇거리며

그 얼룩을 덮는다


<시작노트>

 언젠가 학생들에게 우리가 느끼는 감정들에 대해 이야기해보자고 한 적이 있습니다. 아이들의 입에서는 기쁨, 슬픔, 두려움, 행복, 즐거움 등 수많은 감정의 단어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중에서도 유독 아이들의 마음속에 가장 짙은 잔상을 남긴 것은 대체로 ‘슬픔’이라는 감정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슬픔의 보편적 확장’에 대해 깊이 고뇌하게 되었습니다. 작가 한강이 왜 제주의 4·3을, 광주의 5·18을 끊임없이 불러내었는지, 그리하여 거대한 역사와 사회의 소용돌이 속에서 부서져 간 개인의 슬픔과 불행에 왜 그토록 집요하게 주목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습니다. 


노벨문학상이라는 세계적인 무대가 그의 작품에 주목한 이유 역시, 시공간을 초월해 인류가 공유할 수 있는 가장 아프고도 숭고한 ‘공감의 동질성’을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눈부시게 변화했고, 그 흐름 속에서 개인의 영역은 더욱 견고해졌습니다. 시대가 변하는 방향 자체를 탓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 변화의 과정에서 파생된 파편들이 타인의 상처를 사정없이 찌르는 무기가 될 때, 저는 깊은 비애를 느낍니다.


 잔인하게도 누군가는 4월의 제주에 ‘이념의 굴레’를 씌우고, 5월의 광주에 ‘탱크와 총알’이라는 폭력의 잔상을 정당화하려 듭니다. 그것은 2월 대구 지하철의 참사 앞에, 10월 서울 이태원의 골목 앞에 서서 서슴지 않고 차가운 언어의 칼날을 휘두르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개인의 자유라는 미명 하에, 사회적·역사적 아픔을 온몸으로 겪어낸 이들을 위로하기는커녕 조롱과 비난의 대상으로 삼는 이들을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 사회의 가장 그늘진 곳에서 피어오르는 눅눅한 곰팡이 냄새를 맡는 것만 같아 가슴이 저려옵니다.


 슬픈 일에는 함께 울어주고, 기쁜 일에는 아낌없이 축하해 주는 것.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당연하고도 쉬운 이 두 가지 삶의 태도를, 정작 나 자신조차 온전히 행하지 못하며 살아온 것은 아닌지 서글픈 반성을 해봅니다.


 다시 봄입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을 추도하며, 얼굴도 이름도 알지 못하지만 그날 그 거리에서 쓰러져 간 그들을 위해 조용히 두 손을 모아봅니다. 타인의 슬픔을 내 슬픔처럼 껴안을 수 있는 온기가, 아직 깨어 있는 금남로 거리에 눈물처럼 분분히 내리길 바라면서 말입니다.



시인 김동환

제주 출생.

2024년 서정문학 상반기 신인상 등단

4.3 전국 청소년 문예공모 대상

적도문학상 수상 외

(현) KIS 한국과정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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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6-05-23 09: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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