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한타임즈
[홍콩 문화 칼럼] | 홍콩한타임즈
홍콩의 숫자는 비밀암호
‘돈을 번다’는 광둥어의 숫자
"'1314'가 사랑 고백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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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학창 시절, 연인과의 사이에 둘만의 비밀 번호가 있었다. 서로가 좋아하는 숫자를 정성껏 조합해 ‘보고 싶다’, ‘사랑해’, ‘오늘 보자’ 같은 마음을 암호처럼 주고받곤 했다. 숫자 몇 개에 가슴이 두근거리던 시절이었다.
1990년대, 개인 모바일폰이 흔하지 않던 시기에는 삐삐(무선호출기)가 있었다. 삐삐로 8282를 보내면 ‘빨리 빨리 연락줘’라는 의미이다. 1004는 발음대로 ‘천사’를 표현하는 것이다.
돌아보면, 한국인 역시 숫자의 ‘소리’를 활용하는 데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민족이다. 이삿짐센터 전화번호는 당연하다는 듯 2424(이사이사)이고, 부동산 중개업소는 8989(팔구팔구), 친목 동호회 모임에는 어김없이 7942(친구사이)가 붙는다. 낭만부터 생계까지, 우리는 알게 모르게 숫자에 메시지를 담아 세상과 소통해 온 셈이다.
하지만 홍콩과 한국의 숫자 사용은 다른 점이 있다. 한국은 주로 '유쾌한 놀이, 직관적인 암호, 마케팅 전략'으로 쓰이는 반면, 홍콩은 '운명, 액운 차단, 부(富)에 대한 기복 신앙'과 깊게 연관되어 도시 전체의 공간과 삶을 규정한다는 점에서 분위기의 차이가 있다.

홍콩의 초고층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타서 층수 버튼을 유심히 살펴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3층 다음에 바로 5층이 나오고, 12층 다음엔 15층이 등장한다. 숫자 ‘4’와 ‘14’가 들어간 층이 통째로 증발한 것이다.
건물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자동차 번호판 경매장에 단 하나의 숫자 ‘8’이나 ‘28’이 적힌 번호판이 나오면 수십억 원에서 수백억 원의 경매가가 매겨지며 좌중이 들썩인다.
도대체 홍콩 사람들은 왜 이토록 특정 숫자에 열광하고, 또 특정 숫자를 기를 쓰고 피하는 걸까? 그 비밀은 바로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 광둥어(粵語)의 소리에 있다.
홍콩 문화의 핵심을 관통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 광둥어 발음이 같거나 비슷한 단어를 연상시키는 언어유희’이다. 어떤 단어를 들었을 때 그 소리가 행운을 의미하는지, 불운을 의미하는지에 따라 삶의 미신과 규칙이 완성된다.
기본적으로 숫자 8(빠앗)은 ‘돈을 벌다’라는 뜻의 發(파앗)과 발음이 비슷해 최고의 길운으로 꼽히고, 숫자 4(세이)는 ‘죽을 사’ 자인 死(세이)와 성조만 살짝 다를 뿐 소리가 거의 같아 철저히 금기시된다.
한국인에게도 숫자 ‘4’는 꽤 껄끄러운 존재다. 한자의 ‘죽을 사(死)’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엘리베이터의 4층 버튼 대신 영어 알파벳 F(Four)’를 넣는 풍경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하지만 홍콩 사람들이 숫자 4를 대하는 태도는 차원이 다르다. 한국에서는 살짝 꺼리거나 기피하는 정도라면, 홍콩에서는 아예 숫자 4라는 존재 자체를 도시와 일상에서 철저히 밀어내고 지워버린다.

광둥어 숫자 놀음의 진짜 재미는 숫자와 숫자가 만나는 ‘조합의 매직’에 있다. 숫자가 결합하면 단순한 셈을 넘어 하나의 문장이자 부적이 된다.
1 6 8 (야앗-록-빠앗): 一路發(일로발)과 소리가 같아 "가는 길 내내 돈을 번다"는 뜻이 된다. 상가 전화번호나 사업자 번호판으로 가장 인기가 높다.
2 8 (이-빠앗): 易發(이발)과 같아 "쉽게 돈을 번다"는 뜻으로, 번호판 경매의 단골 대박 조합이다.
3 3 8 (싸암-싸암-빠앗): 生生發(생생발), 즉 "대대로 대대손손 번창한다"는 가문의 축복이 된다.
9 9 (가우-가우): 久久(구구)로 "영원히 오랫동안 함께하다"를 뜻해 축의금이나 연인 간의 선물 숫자로 선호된다.
1 3 1 4 (야앗-싸암-야앗-세이): 一生一世(일생일세)와 발음이 유사해 "한평생 영원히 사랑해"라는 낭만적인 암호로 쓰인다.
반대로 피하고 싶은 불운의 조합도 명확하다. 1 4 (야앗-세이)는 一定死(일정사, "반드시 죽는다"), 2 4 (이-세이)는 易死(이사, "쉽게 죽는다")로 해석되어 홍콩 아파트에서 14층과 24층을 절대 찾아볼 수 없는 이유가 된다.
부정어 ‘5’가 만들어내는 뜻밖의 반전이 있다. 재미있는 점은 부정어 역할을 하는 숫자 5(응/唔 = ~가 아니다)가 개입할 때 일어난다.
행운의 숫자 8이라도 앞에 5가 붙어 5 8 (응-빠앗)이 되면 唔發(응빠앗, "돈을 못 번다")가 되어 외면받는다. 반면, 가장 흉측한 숫자 4라도 5와 만나 5 4 (응-세이)가 되면 唔死(응세이, "죽지 않는다!")라는 반전이 일어나며 오히려 '안전과 생존'을 뜻하는 기분 좋은 조합으로 탈바꿈한다.
달력이나 길거리 간판, 현지인의 대화 속에서 만나는 이 한자들은 홍콩이라는 도시가 언어를 얼마나 효율적이면서도 감각적으로 다루는지 보여주는 소소한 증거다.
혹자는 특정 숫자에 의미를 부여하고 피하는 모습을 보고 ‘비합리적인 미신’이라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초고층 빌딩이 빽빽한 첨단 금융 도시 홍콩에서 펼쳐지는 이 유쾌한 숫자 놀음은, 사실 매일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염원과 해학이 담긴 문화다.
좋은 소리를 찾아 액운을 막고, 소망하는 바를 일상의 번호판과 엘리베이터 버튼 하나에까지 새겨 넣으려는 홍콩 사람들의 풍속은, 결국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살아가고 싶다는 열망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While South Koreans historically used numeric codes for nostalgic communication (e.g., pager codes like 8282 or 1004) and marketing (e.g., 2424 for moving services), Hong Kong's relationship with numbers is deeply intertwined with Cantonese homophones, fortune, avoiding bad luck, and wealth-seeking customs that shape the city’s architectural and physical space.
South Korea: Numbers are largely used as intuitive puns, witty marketing tools, or nostalgic affection codes.
Hong Kong: Numbers carry destiny and practical weight. High-rise residential elevators often omit entire floors containing the digit 4 or 14 (e.g., jumping from 3 to 5, or 12 to 15), and lucky license plates featuring single or double 8s fetch millions of dollars at public auctions.
The cultural obsession stems from Cantonese pronunciation, where numbers sound nearly identical to specific vocabulary words:
8 (baat3): Sounds like 發 (faat3), meaning "to prosper" or "make money".
4 (sei3): Sounds like 死 (sei2), meaning "death". Unlike South Korea, where '4' is mildly avoided, Hong Kong actively erases the number from everyday infrastructure.
| Combination | Cantonese Sound Association | Meaning / Significance |
| 168 (yat-luk-baat) | 一路發 (yāt louh faat) | "Prosper all the way" (popular for business numbers & license plates) |
| 28 (yi-baat) | 易發 (yih faat) | "Easy to make money" (highly sought after at auctions) |
| 338 (saam-saam-baat) | 生生發 (saāng saāng faat) | "Prosper for generations" |
| 99 (gau-gau) | 久久 (gáu gáu) | "Forever / Long-lasting" (favored for wedding gifts) |
| 1314 (yat-saam-yat-sei) | 一生一世 (yāt saāng yāt sai) | "For a lifetime / Forever" (romantic love code) |
| 14 / 24 | 一定死 / 易死 | "Certain death" / "Easy to die" (floors skipped in buildings) |
The digit 5 (ng) acts as a linguistic negative modifier (meaning "not" or "no"):
58 (ng-baat): Sounds like 唔發 ("will not make money"), making it an unpopular sequence.
54 (ng-sei): Sounds like 唔死 ("will not die!"), transforming the feared digit '4' into a positive symbol of survival and safety.
Beyond mere superstition, Hong Kong's numerical obsession reflects the vibrant humor, cultural identity, and human hope of people navigating a hyper-competitive global financial city—etching their aspirations for peace, wealth, and a better tomorrow directly onto car license plates and elevator buttons.
홍콩한타임즈 이유성 발행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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