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한타임즈
토요 문학 산책
심포니 오브 라이프
김동환
꺼진 조명은 수면 아래로 침전하고
선율은 어둠의 식도 속으로 삼켜진다.
흩어지는 군중의 발소리가 파도처럼 가벼운데
"고작 이거야?" 아이의 투덜거림은
이미 메타버스의 국경을 넘어선 지 오래.
나는 침사추이의 해묵은 습기에 기댄 채
미지근한 캔맥주를 열어 젖힌다.
입술 끝에 위태롭게 걸려 있던 영웅의 이쑤시개와
밤하늘을 난사하던 그 뜨겁던 총탄들은
어느 빌딩 유리창에 박힌 채 녹슬어 버렸을까.
달은 여백 없이 밝고 스타페리는 어둠을 가르는데
해수면이 흔들어 깨운 내 얼굴엔 검은 나이테가 흐른다.
이십 년 전, 마천루가 뿜어내던 경외의 신탁(神託)은
조악한 홀로그램의 신기루로 휘발되고,
덜컥이며 천국으로 오르던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는
내 닳아버린 연골이 내지르는 비명이었을까.
밤하늘 펄럭이는 붉은 기의 그림자가
도시의 깊은 주름마다 짙은 그늘을 채워 넣을 때.
아, 너도 나처럼 늙어가는구나.
비어버린 캔을 구겨 검은 바다의 과녁으로 던진다.
손끝에 꽂히는 날 선 시선들에 오히려 신명이 난다.
레이저도 음악도 허물어지는 이 낡은 부둣가,
그래, 우리 같이 꼬꾸라지자. 넘어진들 어떠하랴.
<시작노트>
홍콩의 밤을 상징하던 '심포니 오브 라이트'가 22년 만에 막을 내린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 소식을 접했을 때 마음속에는 두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하나는 최근 다시 본 레이저 쇼가 남긴 씁쓸한 실망감이었다. 거대한 스크린과 가상 세계에 익숙해진 지금의 눈으로 본 그 쇼는 어쩐지 시대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뒤처진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또 하나는, 스무 살 청춘의 눈으로 경외하며 바라보았던 그 찬란한 불빛이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는 아쉬움과 쓸쓸함이었다.
문득 시대가 참 빠르게 변한다는 것을 실감한다. 어린 시절 처음으로 컴퓨터를 마주하고, ADSL의 속도에 감탄하며, 선 없는 전화기에 놀라워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지만 어느덧 휴대폰이 카메라를 삼키고, 손을 떨며 누르던 국제전화 번호 대신 언제 어디서나 무료로 얼굴을 마주하는 영상 통화가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스스로 시대의 변화에 꽤 잘 적응하는 편이라 자부해 왔건만, 모니터 앞에서 코딩을 하며 가상 세계의 프로그램을 뚝딱 만들어내는 아들의 뒷모습을 볼 때면 아득한 거리감이 느껴진다. "세상은 요지경"이라던 옛 노래가 비로소 피부에 와닿는 요즘이다.
마음은 여전히 청춘 같으나 달력을 보면 어느덧 마흔을 훌쩍 넘긴 중년, 누가 봐도 완연한 아저씨가 되었다. 내 늙어감의 궤적 위에서, 한때 아시아 경제의 중심이자 눈부신 발전의 상징이었던 홍콩을 바라본다. 그리고 깨닫는다. 아, 도시도 나처럼 참 많이 늙었구나.
노년의 진시황이 왜 그토록 불로초에 집착했는지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다. 그러나 흐르는 시간을 어찌 막을 수 있을까. 오는 세월을 붙잡지 못한다면, 차라리 그 거대한 정류장에 몸을 싣고 도시와 함께 뒹굴며 달려가는 수밖에. 허물어지는 침사추이의 부둣가에서 그 시절의 따꺼 형님을 그리며 내 안의 거칠고 뜨거웠던 교향곡, '심포니 오브 라이프'를 가만히 그려본다.
시인 김동환
제주 출생.
2024년 서정문학 상반기 신인상 등단
4.3 전국 청소년 문예공모 대상
적도문학상 수상 외
(현) KIS 한국과정 국어교사